일상생각
“이 사회는 누구부터 포기하는가? — 자폐, 중독, 노인… 그리고 그다음은”
감정의말
2025. 6. 16. 13:0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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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언제부터
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먼저 포기하는 사회가 되었을까?
그들은 느리고, 낯설고, 때로는 위험하게 느껴진다.
그러나 진짜 위험한 건,
우리가 그들을 “불편하다”는 이유로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.
🔹 자폐아, 중독자, 노인 — 경계선에 선 사람들
이 세 그룹은 서로 전혀 다른 조건을 갖고 있다.
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다.
- 자폐아는 ‘이해할 수 없는 존재’로 격리되고,
- 중독자는 ‘의지 부족’이라며 방치되며,
- 노인은 ‘쓸모없다’는 낙인 속에 조용히 밀려난다.
그리고 우리는 말한다.
“그건 네 문제잖아.”
하지만 정말 그럴까?
🔻 사회가 아닌, 개인에게 전가되는 책임
자폐아가 위험에 처해도,
중독자가 재발해도,
노인이 기억을 잃고 방황해도
사회는 이렇게 말한다.
“그건 원래 그런 병이고, 원래 그런 사람이고,
그렇게 될 줄 몰랐던 건 본인 책임이지.”
모든 문제를 개인의 ‘결함’으로 포장하는 순간,
공공의 책임은 사라지고, 구조는 방치된다.
⚠️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존재들
이런 패턴은 자폐, 중독, 노인만이 아니다.
조금만 눈을 돌리면
우리 사회가 이미 포기한 존재들이 있다:
- 조현병 환자
- 지적장애인
- 중증 장애인
- 트랜스젠더, 성소수자
- 독거노인, 치매노인
- 홈리스
- 이주노동자, 난민
그들은 사회의 속도, 언어, 문법에 ‘불합격’된 존재들이다.
말 그대로, 감당되지 않는 사람들.
📍 누구든 ‘다음 차례’가 될 수 있다
이해되지 않는 존재를
포기하고 배제하는 방식이 일상화된 사회는
결국 언젠가 우리 자신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.
- 병이 생기면?
- 늙어 느려지면?
- 말이 통하지 않게 되면?
우리는 얼마나 오래 ‘감당되는 존재’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?
🧩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감각
우리는 이제,
‘효율적인 사회’를 넘어서
**"감당의 윤리"**를 복원해야 한다.
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,
이해하려는 태도 그 자체가 공동체의 시작이어야 한다.
우리가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가 아니라,
누구까지 함께 살아낼 것인가를 묻는 시대여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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